8 Letter

8 Talk / Sep, 2017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

 

이 글귀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누군가와 연애를 해본 일도 없던 때였는데, 이 한 문장이 어찌나 이상스럽고 서운하게 읽히던지.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할 때에는 만남에 있어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게 아닌가. 만나기도 전에 이별을 생각해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영원한 사랑이랄지 변함없는 관계 같은 것에 대한 로망이 있던 때였다. 누군가와 만나면 헤어질 일보다 헤어지지 않을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나의 일이고 이별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설령 헤어지더라도 정말 사랑했다면 잘 헤어져선 안 되는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연인들이 으레 그렇듯, 몇 달 밤을 울고 불고 매달리고, 술 마시고 전화하고, 집 앞에 찾아가고, 비 오는 밤 우산도 없이 청승을 떨며 밤새 기다리고. 그래 이별은 그렇게 해야 하는 거겠지.


이별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이별하는 이유는 그다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굳이 부모가 반대해주지 않아도,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이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절로 시들해지는 관계가 대부분인 거였다.

무엇보다 연애를 했다고 해서 두 사람이 꼭 대단한 사랑을 했다든가 아주 특별했다든가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는 거더라. 그저 내가 원하던 모습을 상대에게 기대하고 내 멋대로 내가 찾던 사람이라고 믿어버리고 사귀었지만, 알고 보니 그냥 너는 내가 아니고 너와 나우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냥 우리는 남이었고, 남이고, 남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별은 이미 바로 옆에 다가와 있다.

 

그러니 이별의 순간에 대단히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될 일도 딱히 없다. 한쪽이 이별을 결정하면 한쪽은 받아들여야 한다. 한쪽이 이별을 결정하면 두 사람의 드라마는 거기에서 이미 끝이 난다.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견딜 수 없이 괴롭든 고통스럽든 그건 한 사람의 감정일 뿐인 게 된다. 좋은 이별이란 그런 것이다. 이별이라는 합의에 이르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이별. 헤어지는 과정이 지나치게 큰 감정소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이별.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 어린 시절 이 문장이 그리도 서운하게 읽혔던 건, 잘 헤어져주는 남자란 내게 쉽게 등 돌리는 남자, 냉정하고 정 없는 남자일 것이라고 내 멋대로 해석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 감정과 너의 감정이 다르다고 해서 나의 것을 너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성숙한 사람이다. 이별에 따른 슬픔은 우리의 몫이 아닌 나의 몫이고, 각자 지고 갈 몫의 아픔이 있다는 걸 알 만큼 어른이 된 사람이다. 이별을 결정한 상대가 야속할 지라도, 내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지난 관계에 대한 예의임을 알고 있는 괜찮은 사람이다.

한 때나마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이와 남이 된다는 건 참 가슴 시린 일이다. 그러나 살면서 이 저릿한 슬픔 한 번 겪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오래 만난 연인과 지난 밤 이별한 사람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출근해 자판을 두드리고 가장 가까운 이를 떠나 보낸 사람도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채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실연의 상처를 사방팔방에 내보이지 않는 건 덜 슬퍼서가 아니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온전한 자기 몫의 슬픔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이기에 그렇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이별 공식 역시 이별의 순간 그 시기의 아픔을 오롯이 혼자 감내한 뒤 찾아오는 내적 성숙을 의미하는 게 아니던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작가의 시 너에게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시는 즐겨 외면서 정작 그 안에 담긴 진리에는 무심한 게 아닐까 싶을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너에게 묻는다. 날 떠나간 이에 대한 원망 대신 고단한 삶의 옆자리에 있으면서도 뜨거운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던 인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나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는 이는 고이 보내주면 된다. 우리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는 말이 이제는 슬프게 들리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참 좋은 이야기인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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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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