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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ife / Sep, 2017

소울 인 서울 #3 해방촌

소울 인 서울 #3 해방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 서울에서 가장 높은 하늘을 보기 위해 해방촌을 찾았다. 해방촌엔 툭 치면 30년 된 먼지를 뿜어낼 것만 같은 벽돌집, 잡초 무성히 방치된 텃밭, 서울살이에 익숙해진 몸으로는 도무지 적응이 어려운 오르막 돌길이 있다. 이 생경한 골목 골목을 걷다 보면 이내 지방의 외딴 동네를 헤매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고 만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순간,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서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빼곡한 서울의 지붕들이 눈 속으로 쏟아진다. 빌딩 사이의 틈으로만 하늘을 볼 땐 미처 몰랐다. 서울의 하늘이 이토록 거대하고 관대한지를. 하루하루를 이겨내듯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밤이면 밤마다 해방촌으로 모이는 이유가 바로 이 하늘인가 싶었다.  

해방촌은 왜 해방촌인지


한번 들으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 피난민들이 남산 아래에 위치한 이 동네에 정착하면서 만들어졌다. 쉽게 말해 이곳은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철저한 외지인이다. 과거의 설움 따위 알 길 없이 해맑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어쩐 일인지 사진 속엔 그 시절의 그리움과 상실감, 막막함이 여과 없이 담기고 만다. 이곳에는 진정한 해방을 원하는 갈망이 여기 저기에 베여 있다. 그리고 외지인으로서 이곳을 방문한 우리는 막막한 현실에서의 해방을 그리며, 실향민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채로 다시금 이곳을 찾게 된다.  

▲ 해방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정취

지도앱 끄고 걷기


해방촌에서는 의외의 즐거움이 불현듯 나타나곤 하는데, 골목 사이로 훅 다가오는 남산타워의 모습이나 땀 흘리며 오른 오르막길의 끝에서 만난 서울의 전경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기쁨의 묘미는 예상하지 못한 데서 찾게 된다. 책방 또한 그러한 기쁨 중 하나다. 이미 이 동네의 책방들은 꽤 유명해서, 주말이면 일부러 시간을 내 책방투어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문학 서점 고요서사’, 독립출판물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복합출판물 서점 별책부록노홍철이 운영하는 철든책방까지. 이들이 해방촌에 모인 까닭은 알 길이 없지만 이 책방에서 이 책방으로 넘어가는 길이 다소 멀어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곳곳에서 시원한 서울의 하늘을 만날 수 있기 때문. 날이 맑아 하늘이 예쁜 대낮이나 적당히 선선한 바람 부는 초저녁, 지도 없이 책방을 찾아 나서 보자. 같은 곳을 뱅뱅 돌아도, 땀 흘리며 언덕길을 걸어도 괜찮다. 그조차 멋스러운 가을이니까.    


|문학 서점 고요서사


출판 편집자로 일하던 서점 주인이 2015 10월 문을 연 문학전문서점. 버지니아 울프부터 김영하까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 우리가 읽어야만 하는 소설, , 에세이 등 순수문학 서적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벼운 독립출판물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책의 내용이 난해할 수도 있겠지만 단정하게 꾸며놓은 서점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용산구 용산동2 20-9 / 매일 14:00~21:00) 


|독립출판물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은행원이 차린 서점이라는 이색적인 히스토리를 지닌 곳. 홍대나 연남동 근처의 독립출판물 서점을 즐겨 찾는 사람이라면 스토리지북앤필름의 분위기가 익숙할 것이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처럼 가지런히 표지를 내보이며 서있는 책들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질서 없이 박스 안에 가득 쌓인 얇은 독립출판물들 사이에서 나만의 보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운이 좋으면 마음이 진동하는 영혼의 글귀를 발견하게 될지도(용산구 용산동2 1-701 매일 13:00~19:00)


|복합출판물 서점 별책부록


문화예술, 디자인, 건축, 매거진, 만화책, 사진집까지 이곳에서는 앞선 두 서점에 비해 보다 포괄적인 분야의 다양한 출판물들이 뒤섞여 있다. 특히 디자인, 예술과 관련된 국내외 서적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해당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권 한 권 놓치기 싫은 책들이 많을 것이다. 한쪽 코너에서는 메모나 엽서, 에코백 등 책 외의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어딘가 인디스러운 이 곳만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용산구 용산동1 1-184 / ~ 14:00~19:00)


※ 세 서점은 매월 첫쨰주 수요일 밤, ‘해방촌 심야책방을 운영한다. 세 서점 주인이 합심해서 이날만은 7시 전후인 마감시간을 자정까지 늘려 늦게까지 방문객을 맞이하니, 서점 주인과 은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면 이날 방문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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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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