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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alk / Aug, 2017

이별 후 후회로 남는 것들

이별 후 후회로 남는 것들

 # 마음을 다 쏟지 않은 것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기 때문에 이별 후에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마음을 다 쏟은 일을 후회한다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이별 후에 후회하는 건 주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쪽이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지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회한과 아쉬운 미련이 더해지면 이별의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만다. 다가오지도 않은 이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든 괜한 자존심 때문이었든, 지난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늘 후회가 남는다.

 

마음을 주는 일이 두렵다고 말하곤 하지만, 마음은 누군가에게 준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더 주면 조금 남고 많이 주면 적게 남는 것도 아니다. 남겨두었다 나중에 줄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누군가를 아낌없이 좋아할 수 있었을 때, 마음을 다 쏟을 상대가 있었을 때 아껴두었던 마음은 이별 후에 반드시 후회로 돌아온다. 아낀다고 아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 마음이 남아있을 때 헤어진 것

 

남자 Z는 헤어지고 나서야 이별의 의미를 알게 됐다. 이별을 택한 것은 자신이었다. 먼저 이별을 말한 것도 자신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이별을 결정했지만, 결정을 내린 머리의 속도를 마음은 따라가지 못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있다는 그 한 가지의 이유가 헤어져야 하는 열 가지의 이유보다 더 중요했다는 걸, 그는 이별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은 언제나 늦은 법. 깨닫고 난 뒤에는 이미 관계가 끝난 뒤였다. 다시 되돌리고 싶어도 이별을 택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헤어져야 하는 이유들이 수없이 쌓여있어도, 상대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다면 아직은 헤어질 때가 아니다. 헤어져야 하는 그 이유들로 서로에 대한 감정마저 다 사라졌을 때, 그 때가 정말 이별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한 것

 

좋아하는 마음은 공유하게 한다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상처를 공유하게 한다그런데 서로의 모든 것을 다 공유해야만 좋은 관계인 걸까.

 

관계가 깊어지면 자연히 공유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옆에서 오랜 시간을 보아왔기 때문에짧지 않은 세월을 함께 겪어왔기 때문에 저절로 공유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관계가 단단해 보이는 건각자의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데에는 그만큼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한다면 모든 것을 다 공유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섣불리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터놓았던 관계는 후회를 남긴다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공유하려 들었던 섣부름나에 관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은 경솔함모든 것을 다 터놓으면 그만큼 깊은 관계가 될 거라고 믿었던 어리석음이 모든 것들이 이별 후에는 후회로 돌아오곤 한다.   

 

영원할 것 같던 관계도 끝이 나곤 한다정말 끝나지 않을 관계라면 모든 것을 당장 공유하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나로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을 상대방과 모두 공유하는 데에는 적어도 그와 엇비슷한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터좋은 관계란 단순히 모든 것을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 관계가 아닐지.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은 것

 

연인으로 만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더없이 좋은 감정을 가진 채로 헤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이별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나쁜 감정들은 사라지곤 하지만이별 직전에는 상대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마음에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크게 다툰 날이 만남의 마지막 순간이 되기도 한다좋아했던 만큼 서운함과 미움이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Y는 이미 이별을 결정한 여자에게 수없이 많은 연락을 했다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걸고 수십 통의 메시지를 남겼다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던 마음서운한 마음원망의 마음은 그에게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수도 없이 내뱉게 했다상대에 대한 비난과 원망을 가득 담은 원한에 찬 말들결국 후회와 상처는 그의 몫이었다한때나마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났던 상대에게자신이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람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고통으로 돌아왔다.     

 

헤어져도 좋은 관계로 지내자며 굳이 쿨한 체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어차피 남이 될 관계에 원한을 남길 이유도 없다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다 해버리고 상대방을 실컷 비난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지만결국 괴로운 건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은 쪽이다.




우리만 있고 나는 없었던 관계에 대한 후회, 나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대한 후회, 상대방이 털어놓은 불만을 묵살하고 지나갔던 것에 대한 후회, 되돌릴 수 없는 나쁜 기억만을 남긴 만남 그 자체에 대한 후회까지. 헤어지고 후회로 남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별하던 날, 학창시절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 떠올랐다. 중간고사와 달리 기말고사는 끝나는 날이 방학의 시작이다. 그러나 정말 끝인 건 아니다. 한 학기는 기말고사 성적표가 나와야 비로소 끝이 난다. 이별 역시 헤어진 그날 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별 후에도 각자의 인생은 흘러가고, 우리는 지난 연애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한다.

 

이별의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후회로 인한 괴로움은 이별의 고통과는 또 다른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은 과거의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이미 성적은 매겨졌으니, 그저 성적표가 날아올 날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형편없는 성적표에 속이 쓰리다면 다시 시작될 학기에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이별 후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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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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