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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alk / Jul, 2017

결혼적령기라는 함정

결혼적령기라는 함정

"남자 쪽 어머니가 결혼을 원한대"

 

소개팅과 함께 전해진 한 마디. 그 한 마디 이전에 소개되었던 그 남자는 꽤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에게도 그 소개팅에 대해서도 흥미가 똑 떨어졌다.

 

물론 부모가 결혼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나온 그 어머니의 아들은, 소개팅 자리에서 '결혼 상대로 괜찮은 사람일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볼 것이다.

 

선이든 소개팅이든 연애를 염두에 뒀든 결혼을 염두에 뒀든,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각자는 서로에 대한 점수표를 들고 앉아있게 마련이다. 괜찮은 사람일까, 말은 잘 통하는 사람인가,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까, 말하는 것은 괜찮은가, 가치관은 나와 잘 맞는가 등등.

 

그러나 결혼을 염두에 둔 사람의 점수표 질문 내역은 좀 다를 것 같다. 결국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다수 포함될 텐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그런 소개팅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이 들었다.

 

열등감일 수도 있다. 좋은 친구, 좋은 연인이 될 자신은 어느 정도 있지만 나는 좋은 아내나 좋은 며느리가 될 자신은 별로 없다. 좋은 아내나 좋은 며느리가 무엇인지조차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낮은 점수가 매겨질까 두려워 내 쪽에서 지레 거절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소개팅을 거절하고나자 주선자로부터는 예의 그 말이 돌아온다.

 

"소담씨, 결혼 적령기잖아? 결혼 생각할 때 되지 않았어?"

 

", 저 결혼 적령기 아니에요"

 

답을 하고 집에 오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결혼 적령기가 아니라는 내 말이 상대에게는, 마치 애써 먹은 나이를 숨기려는 의도로 들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도둑이 제 발 저린 양 말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불필요하게 단호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워낙 여자 나이에 예민한 사회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내가 결혼 적령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살 한살 드는 나이에 대한 부담도 전혀 없고 나이 듬에 따라 결혼에 대한 압박이 늘거나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직은 결혼하고 싶지 않은데 결혼하고 싶을 만큼 괜찮은 남자가 이 (이른) 시점에 나타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결혼적령기란 무엇일까. 이건 객관적인 개념이 아니라 주관적인 개념이다. 꽃도 피는 시기가 다 다루다. 하다못해 턱 밑의 뾰루지도 짜내야 할 시기가 전부 다르다. 결혼적령기도 사람마다 다르다.

 

일단 싱글일 때 할 수 있는 일과 결혼하고나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싱글일 때 하기 어려운 일과 결혼하고나서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내가 인생에서 꼭 이루고자 하는 일, 이를테면 해외 유학과 같은 일이 아직 과업으로 남아있다면 당장 결혼하긴 어려울 것이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하고 누군가를 케어할 여력이 전혀 안된다면 그런 이에게도 역시 결혼은 아직 이를 것이다

우리는 스무살 이후로 걸어온 길이 각자 다르고 인생의 목표도 성취도 가치관도 생활방식도 모두 다르다. 이런 우리가 일괄적으로 20대 후반, 30대초반 정도의 연령대를 '결혼 적령기'로 정해두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결혼 적령기는 '내가 결혼하기에 적절한 시기'이다. 혹자에게는 20살이 될 수도 있고 혹자에게는 50살이 될 수도 있다. 잠든 시간이 다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6시에 기상할 순 없다.

 

우리나라는 입학도 꼭 같은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은 물론 대학 졸업도 대부분 같은 나이에 하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에 대한 배척이 유독 심하다. 그래서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각자의 공포 또한 심한 것 같다.

 

그러나 그 공포는 그저 가상의 공포일 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두려워해 왔다.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은 결혼, 그리고 그로 인한 파국은 평균의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일을 불러온다.

 

'결혼적령기'라는 함정에 속아 무의미한 불안에 떨고 있는 자들이여. 고개를 들어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라. 특히 결혼 생활을 주제로 한 곳들이면 좋다. 거기에는 실패한 결혼생활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낱낱이 쓰여 있다. 대충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믿고 사회적 결혼적령기를 넘기지 않으려 했던 이들의 실패기가 그곳에 가득하다.


잊지 말자, 나의 결혼 적령기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타의에 의해' 내리는 실수, 이제 더 이상은 반복하지 않을 때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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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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