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Letter

8 Talk / Jun, 2017

좋은놈 잘맞는놈 좋아하는 놈

좋은놈 잘맞는놈 좋아하는 놈

"넌 왜 그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내 남자 보는 눈에 대한 얘기다. 대학 때부터 친구 S는 나를 '개살구'라고 불렀는데 '빛 좋은 개살구' 마냥 겉만 그럴 듯 하고 실속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특히 나의 남자 보는 눈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해왔는데, 나는 같은 지적을 그녀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숱하게 들어왔다. "네가 좋다는 애들은 다 좀 이상해." 그러니까 이 글은 수년간 이어져 온 내 가까운 사람들의 지적에 대한 항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잘 맞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이 세 가지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얼핏 듣기에는 비슷하게 들리는 말들이지만 이 셋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좋은 사람'이라는 건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개념이다. 특히 연인으로서 좋은 사람의 기준은 거의 정해져 있다. 굳이 무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고서야, 연애하기 좋은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조건들은 거의 엇비슷하다. 배려심 있고 이타적이고 따뜻하고 성실하고. 그래서 나에게 좋은 사람은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이다. 나에게 좋은 연인이었던 사람은 보통 그 이전의 연애에서도 좋은 연인이었다. 대개 그렇다. 남자 X는 그와 만났던 모든 여자들이 헤어지고도 그를 잊지 못한다. 헤어진 여자마다 전화를 걸어오고 자신을 귀찮게 한다며 푸념한다. 남자 Y는 그와 만났던 모든 여자들이 그와 헤어지자마자 새인생을 찾는다. 헤어진 여자로부터 연락이 온 일조차 없다고 푸념한다.

 

'잘 맞는 사람'은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개념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성향이 작용하게 되는데, 예컨대 외향적인 사람과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내향적인 사람과 잘 맞는 사람도 있다. 말이 많은 사람과 잘 맞는 사람도 있고 말수가 적은 사람과 잘 맞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잘 맞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들은 주로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육식을 즐기는지 채식을 즐기는지, 야외활동을 즐기는지 실내활동을 즐기는지,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 친구가 많은지 적은지 등등.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와 같이 어떤 것이 옳다는 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와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는 건 애초에 어려운 일이다. 너는 육식을 하고 나는 채식을 하기로 합의를 할 수는 있지만, 육식주의자가 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취향의 문제를 떠나,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건 나의 성향이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도무지 기준을 알 수 없는 개념이다. '좋은 사람'이어서 좋아할 수도 있다. '잘 맞는 사람'이어서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사람도 아니고 잘 맞는 사람도 아닌데 좋아할 수도 있다. 좋아한다는 건 그래서 이상하고 또 무서운 일이다. 운이 좋아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 (주관적으로) 잘 맞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좋은 사람도 아닌데다가 나와 잘 맞지도 않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불행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첫 연애를 시작하기 전,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은 주로 '좋은 사람'이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줄 때 가슴에 이는 감동.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던 시절에는 나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퍼주고 베풀어 주는 그런 '좋은 사람'이 좋았다. 그러나 '좋은 사람'의 곁에 있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받는 데서 오는 기쁨과 감동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부터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나와 잘 맞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래 붙어있을 수 있느냐는 것. 같이 있을 때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야기가 오가지 않을 때에도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무언가를 먹거나 보거나 행해야할 때도 특별히 불편함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얼른 집에 돌아가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조차 인간은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동안 어디에 있을 것인지, 누구와 있을 것인지, 어떤 자세로 있을 것인지, 언제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인지 등등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니 혼자도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는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디에서 만날지, 몇 시에 만날지, 만나서 무엇을 할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볼지, 무엇을 마실지, 언제 어디에서 몇 시에 잠들 것인지.

 

그래서 몇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성인남녀에게는 단 하루를 온전히 같이 보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잘 맞지 않는 사람과는 몇 시간도 같이 있기가 어렵다.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좋은 사람을 찾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보다 많았다. 그러나 '잘 맞는 사람' '잘 안 맞는 사람'보다 적었다. 특히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잘 맞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잘 맞는 사람을 찾아내고나면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이면, 굳이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좋았다.


단지 좋은 사람이어서 혹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이어서 연애를 시작한 경우, 헤어진 이후에도 남는 것이 없었다. 그냥 한때 여러 날을 같이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뿐, 지금은 멀어진 옛친구같은 느낌이 들뿐, 연인으로서 그가 나에게 남긴 것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건 좋은 사람, 잘 맞는 사람을 찾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좋은 사람' '잘 맞는 사람'은 이미 정해진 답과 같은 대상들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확률적으로 그 가운데 존재할 것이 분명한 그런 존재들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은 그를 좋아하는 감정이 내 마음에 생기기 이전에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될 지도 알 수 없고 그런 사람을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 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런 감정이 내 마음에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래서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 중에는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 아닌 혹은 딱히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아닌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량 백수 V도 있었고 음성적인 일을 하는 Z도 있었고 누가 봐도 또라이인 또라이 G도 있었다. 이것이 내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넌 남자보는 눈이 없다"고 지적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고도 좋아서 좋아했을 뿐, 애초에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에 좋은 놈은 널렸다. 나랑 잘 맞는 놈도 얼마든지 많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못 만날까봐, 나랑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을 못 만날까봐 걱정이 드는 때는 없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놈을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저 쿵짝이 잘 맞는 사람과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가끔은 그랬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잘 맞는 사람도 아닌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인생이 도탄에 빠질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 아는 것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어차피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니, 이왕이면 좋은 놈이고 잘 맞는 놈을 좋아하게 되는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평소에 더 착하게 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남자를 보는 눈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어차피 결혼할 생각도 없으니 좀 이상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도 상관없지 않느냐고 덧붙이면서, 좋은 놈이면서 나랑 잘 맞는 놈을 좋아하게 되길 앞으로도 나는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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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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