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Letter

8 Talk / May, 2017

존재의 소중함

존재의 소중함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 김춘수 <강우>

김춘수 시인의 강우라는 시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쏟아지는 비처럼 와닿는다.

 

존재감이란 무언가가 곁에 있는 상태에 대한 감정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감정은 대상이 곁에 없을 때 훨씬 크게 느껴진다.

 

첫 이별의 순간, 나는 만나던 사람과 완전히 헤어지고 나서야 이별의 의미를 알았다. 헤어짐, 늘 곁에 있던 것의 부재에서 오는 감정은 단순한 허전함과 슬픔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간을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도 이별을 겪고서야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잠이 오지 않던 새벽 네시에 인천공항에 마실을 나갔다가 괜히 공항 안쪽 게이트까지 들어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갓난아기를 앉힌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던 여자는 기대가득한 얼굴로 게이트를 통과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 금새 표정이 어두워진다. 마중나온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인데, 그러다 잠시 후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실망으로 덮였던 얼굴이 이내 환해진다. 사람 얼굴에 꽃이 피는 걸 보고있으니 내가 다 안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일하던 옷차림 그대로 공항에 온 초로의 택시기사는 그 옛날 투지폰으로 딸과 통화중이다. 인석아 아빠 아까부터 여기 와있어 얼른 나와.

 

몇몇은 꾸벅꾸벅 졸고 웬 아줌마가 데려온 강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가방 안 어디선가 앙앙 짖어대고

제일 눈길을 끈 건 웬 젊은 여자 하나. 내가 공항에 왔을 때부터 있더니 게이트가 가장 잘 보이는 가운데 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도 오래 서있으니 앉아서 기다려도 되겠구만, 싶은 오지랖이 든다. 그러다 전광판에 랜딩 사인이 뜨자 그 때부터 게이트 문이 열릴 때마다 까치발로 그 안을 들여다보겠다고 호들갑이다. 그러기를 한참이 지나니, 이만 밤마실을 마치고 돌아가려다가도 그 여자가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지 기어이 얼굴은 보고가야겠다고 작정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상한 작정과 오기로 여자와 같이 기다리기를 십분쯤 되었나 게이트에서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나오고 여자가 쪼르르 달려가는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공항 안의 모든 눈동자가 일시에 그 둘에게로 쏠린다. 여자를 안고 쓰다듬던 남자는 그 시선을 느끼고는 입모양으로뭐야 왜 이렇게 쳐다봐?’하더니하여튼 예쁜 건 알아가지고하고 웃으며 둘이서 깔깔 웃고는 팔짱을 끼고 사라져간다.

 

예쁜지 어떤지 얼굴은 보지도 못했고 여자가 우리에게 보여준 건 궁둥이 뿐인데, 공항의 모든 눈동자가 그리로 쏠린 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고 궁둥이 때문이었다는 걸 남자는 영영 모르겠지?

 

멀어져가는 두 사람 뒷모습을 보면서 기억해두기로 했다. 그다지도 보고싶어하던 누군가의 마음이 여기 공항에 있었다는 걸.

연인이든 가족이든 우리는 늘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한다. 일어나서 아침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저녁을 먹고 온전히 주말을 같이 보내는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오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할 일이 많아지는 시기에 나는 앞으로 더욱 자주 새벽 네시의 인천공항 게이트 B의 풍경을 떠올리기로 다짐했다. 곁에 있어 당연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것임이 아님을. 언제나 보고싶을 때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잠시 떠난 해외여행 길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재의 허전함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를. 온갖 기념일로 가득 찬 오월이 지나도 그런 마음들을 오래 오래 간직하며 살아가기로 그렇게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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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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