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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alk / Apr, 2017

나쁘기만 한 만남은 없다

나쁘기만 한 만남은 없다

언젠가 세상에 오직 나쁘기만 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글을 썼는데, 몇 시간 후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은 전 남자친구로부터 어마어마한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이별한 직후였는데, 수화기 너머의 우는 목소리는 말했다. 언니 이 일은 정말 오로지 나쁘기만 한 것 같아요.

 

그러나 나쁜 인연과의 만남에도 분명 좋은 점은 있다.

 

일단 그런 연애를 한번 끝내고 나면, 나 혼자여도 정말 괜찮게 된다. 원래 싱글이란, 그 상태가 지속된지 아주 오래 되었을 때보다 지금 막 혼자가 되었을 때 더욱 외롭고 견디기 힘든 법이다. 부재는 있다가 없을 때에 더 크게 느껴진다.

 

이별 직후, 외로움이라는 놈에게 시달리느라 술에 빠져지내고 무력감에 일상은 엉망이 되고, 그로 인해 찾아 온 자괴감에 또 다시 괴로워하던 나약한 나날들. 나는 정말 별로였던 연애를 끝낸 뒤 그 나약한 자아와 영영 이별할 수 있었다.



이십대 초반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차라리 혼자인 게 훨씬 나은 인연도 있다는 걸 그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사람에게 학을 떼는 경험을 한 번 하고나니 이별 후 혼자 된 나날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혼자인 게 괜찮아지고 나니 외로움에 억지로 누굴 만나게 될 일도 없어지고, 비로소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혼밥, 혼술, 혼고기, 혼영화, 혼산책, 혼여행은 물론 혼자 놀기, 혼자 자기, 혼자 살기, 혼자 웃기, 혼자 울기 등 ''으로 시작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게 되고 나니 연애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도 그때 찾아왔다. 혼자인 상태가 외롭고 싫어서가 아닌, 정말 오로지 네가 필요해서 시작하는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리고 나쁜 연애는 다음 연애에 몹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이성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욕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던 놈을 한 번 만나고 나면, 이후에 만난 사람이 정직하기만 해도 만족하게 된다. 엑스의 치명적인 단점을 안 가진 사람이기만 해도 거기에서 더 큰 욕심을 안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그 단점이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두루두루 좋은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감사함을 매우 크게 느끼게 된다. 그것이 전혀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이기 때문에.


연애 경험이 없던 시절에는 내가 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가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내가 이성에게 기대하는 것은 완벽한 것에 대한 욕심이 아닌 아주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몇 번의 연애를 거치고 나니, 내가 상대에게 품고 있던 것은 대부분 신기루같은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을 갖지 않은 사람을 찾는 일도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좋은 연애만 하고 언제나 내게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도 감사를 몰랐을 것이다.

 

나쁜 관계, 나쁜 인연, 나쁜 사람으로 인해 가슴앓이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세상에 오로지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것을. 가장 좋은 것은 그 나쁜 것과 결별한 뒤에 당신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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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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