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Letter

8 Talk / Mar, 2017

온라인에서 볼 땐 괜찮았는데

온라인에서 볼 땐 괜찮았는데

오래 전 어느 날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무언가를 너무 싫어하진 말자는 거였다. 내가 무언가를 너무 싫어하면 그 너무 싫어하는 마음은 반드시 언젠가 내 발목을 잡는다. 가장 싫어하는 형태로 눈앞에 펼쳐져 기어이 사람을 골탕 먹인다. 아마도 머피의 법칙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그걸 깨달은 이후로는 너무 싫다 싶은 게 있으면 그걸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쓰곤 한다.

 

최근까지도 너무 싫었던 것 중의 하나는 온라인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온라인은 커녕 디지털화된 것도 대체로 안 좋아하고 이메일은 연인으로부터 발송된 것이어도 편지 비슷한 것으로도 치지 않는 나로서는, 온라인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게 참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교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에 누군가를 소개받더라도 약속 장소와 시간 정도만 정하고 만나기 전까지는 문자도 주고받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 근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일상생활에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를 완벽히 배제하기는 힘든 것 같다. 일단 오프라인에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다. 만나려거든 일터나 근거리의 사적 모임에서 만나야 할 텐데, 그건 또 그것대로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 되기도 한다. 또 모두가 SNS 계정을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보니 오프라인 상에서의 인간관계가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것도 자연스럽고, 직업적 업무가 온라인 상에서의 활동과 관련을 맺게 되는 일도 흔하다. 오프라인 상에서 한 두 다리 건너 아는 지인과 온라인을 통해 먼저 교류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라인 상의 교류를 내키지 않아하던 나 역시도, 최근 1,2년동안 이성 관계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만나기 전에 먼저 온라인을 통해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실제로 만난 이후에는 관계가 발전하지 않았다. 온라인 상에서는 꽤 좋았는데 그 관계가 일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Mr.찌라시

 

내가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얼마간 대화를 나눴던 남자 Z는 매우 반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인성이 똑 된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른 남자에게는 천성적으로 별로 끌리지 않는 나지만, 그래도 이성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그를 만났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그는 함께 있던 다섯 시간 내내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했다. 그로서는 자리를 즐겁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을 수도 있고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최선의 시도였을 수도 있다.

 

그는 방송가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험담의 대상에는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익숙한 유명인들에 대한 험담을 듣고 있자니 증권가 찌라시를 읽는 수준의 재미는 있었지만 그건 결코 유의미한 재미가 아니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면 그 이야기를 대충 믿기라도 했겠지만, 처음 대면한 남자의 입에서 나온 타인에 관한 험담을 내가 믿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그 자리가 끝난 뒤에 남은 강력한 나쁜 인상은 그가 험담했던 연예인 A, 가수 B, 개그맨 C모씨에 대한 것이 아니라 험담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어보였던 그에 대한 것이었다. 차라리 SNS 상에서 매일 전투적인 글을 쏟아내고 여기저기에 악플을 달던 사람이 그리하였으면 일관성이라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남자가 첫 만남에 온종일 남에 대한 험담만 늘어놓으니 문자 그대로 너무 별로였다.

 

가까운 친구 혹은 연인 사이에서는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이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두 사람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그냥 네가 싫어하니까 나도 싫어한다고 믿어볼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설사 그 대상이 아무리 나쁜 인간이어도 누군가에 관한 험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당신이 욕하는 그 인간보다 지금 내 귀에 부정적인 언어들을 채워 넣는 당신이 더 싫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왜 그 남자는 알지 못했을까.

2# 전 진짜 남자입니다

 

초식남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내 의도와는 전혀 달리 나보다 여성스러운 남자들을 만나는 사고를 자주 겪어온 나로서는, 그 누구보다 마주 앉은 남자가 진짜 수컷이길 바란다. 그러나 그걸 스스로 증명해보이려는 남자만큼이나 남자답지 않은 남자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온라인 상에서 알고 지내던 남자 X군은 오프라인 상의 첫 만남에서 자기 자신을 두고진짜 남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갓 스물이 된 아이들이 이제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트위터에 끄적여 놓은 걸 볼 때의 심정도 그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나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생겨난 노력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으나, 그 노력은 결과적으로 아무 소용도 없었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의 유형을 묻는 각종 설문조사에서센 척하는 남자는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걸 잊지 말도록 하자. 강한 사람은 강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법이다.

 

3# 2차는 그쪽이 사는 거죠?

 

온라인 상의 교류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메시지도 공짜, 사진 전송도 공짜, 통화도 공짜다. 우리 둘의 대화에는 커피 값 수준의 비용도 들지 않는다. 밤새 대화를 나눠도 각자의 공간에서 먹고 마시는 건 각자 해결하게 되니, 어쩌면 자연스런 더치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나면 들어가야 하고 먹어야 하고 계산해야 한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더치페이가 자연스런 질서가 되어가고 있는 때에, 연인관계도 아닌 남녀가 계산 문제로 불편해질 일은 딱히 없는 것 같다. 각자 번갈아가면서 한 번씩 내든지 상황 봐가면서 둘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종종 여자가 나를 뜯어먹으려고 만나는 게 아닐까, 말로만 듣던 된장녀가 아닐까 지나치게 방어적인 남자들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첫만남에서부터 더치페이에 관한 의견을 묻는다든지 밥을 사고서는 대뜸술은 그쪽이 사는 거죠?” 따위의 질문을 던지는 그런 남자들.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해보자면, 김치녀’, ‘된장녀그리고 (무개념녀에 대조되는) ‘개념녀이 셋은 어쩌면 유비, 관우, 장비와도 같은 관계다. 남녀 전쟁으로 인터넷이 어지러운 때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며 명품에 목매는 여성들을 꾸짖기 위해 탄생한 것이된장녀, 된장녀라는 말로는 이 나라 여성들의 총체적 과오가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다는 일부 남성들의 탄식을 거쳐 탄생한 것이김치녀. 된장녀도 김치녀도 그 공격적인 어감으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의 사용이 어려우니, 역으로 긍적적인 측면을 강조해 대중적으로 순화한 것이개념녀인데, 각자의 탄생 배경과 쓰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여성들의 의식,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관념을 꾸짖고자 하는 어떤 공동의결의를 담은 단어들인 것이다.

 

이 어휘들의 탄생 뒤에는 여자가 나를 돈으로 볼까봐 나를 뜯어 먹으려고 만나는 걸까봐 그래서 내가 호구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 즉 불안이 있다. 일베 등의 커뮤니티에서 보여지는 남자들의여성 혐오정서도 실은혐오가 아닌불안감에 가깝다.

 

남자에게 백원도 더 내게 할 생각이 없는 여자로서도, 이런 부류의 남성과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여자가 금전적인 이유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일까 불안해할 만큼 자신 없는 남자가 매력적인 남자일리 만무하거니와, 자신과의 만남에서 여자가 돈을 얼마나 쓰는가의 여부로 여자의 마음을 판단하고자 하는 남자의 모습이란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트위터를 통해 남자친구를 만난 고등학교 동창 S양은 지난 달에 연애 5주년을 맞았다. 트위터를 통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얘기에저런 만남이 얼마나 갈까속으로 생각했던 나는 좀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남자를 만나고도 매번 사계절을 견디기가 버거웠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이와 연애를 시작한 지인 J양의 소식도 듣게 되었다. 여전히 그런 일이 신기하지만 그 둘의 만남이 제법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든다. 예전에는 가벼운 혹은 의미 없는 만남의 상징으로 여겼던 어플을 통한 만남에 대해서도 우호적이 됐다.

 

어차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닌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너의 계정이 나의 계정을 발견한 일도 운명이 아니란 법은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모습의 간극이 서로를 불편하게 할 만큼 크지만 않다면.

-

writer 정담

editor Juney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