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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alk / Feb, 2017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던 것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감정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고 여긴다. 나와 아무 관련 없던 것들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상대의 지난 연인 이야기, 그의 첫사랑 이야기, 지난 날 그가 품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

 

그건 이미 지난해, 지지난해 혹은 몇 년 전의 일들이다. 그 일이 한창 일어나던 중의 나는 분명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살았다. 아니 더러는 내 연애에 빠져 남의 일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과거의 그 내 마음은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어버리고, 알 리도 없던 남의 연애사가 내 마음을 이토록 괴롭히는 건 대체 무슨 일인가. 이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감정과 함께 찾아오는 건 대부분 사랑이었던 것 같다.

 

사랑이었던 것 같다고 쓰는 건, 여전히 사랑이란 게 무언지 다 알지 못하기에 그렇다. 그 감정에 실컷 빠져있을 때야 전부 다 사랑이라고 믿었지, 누군가와 연인 관계를 맺고 있는 중에 굳이이건 사랑은 아니야생각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정체는 오히려 관계가 끝난 뒤에야 선명하게 드러나, 그건 아마도 사랑이었던 것 같다든지 사랑은 아니었다든지 하는 판단을 그제야 하게 한다. 좋아하는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인 줄만 알았는데, 지나고 나면 어떤 마음은 품었던 기억조차 나지 않고 어떤 마음은 그 당시의 것보다 더 생생하고 아리게 느껴지니 그 마음의 산도(酸度)를 우리는 어떻게 가늠해야만 할까. 요컨대 그것이 산성인지 염기성인지 알게 하는 리트머스 같은 것은 분명히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엔 그게 질투였다.    

 

질투가 시작될 때 사랑도 시작된다. 아니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선후 관계야 어찌 됐든 독야청정 푸르던 내 마음을 그토록 붉은 질투로 물들도록 하는 감정의 정체는 언제나 사랑이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연애가 다 질투를 동반한 건 아니었다. 어떤 연애에서는 상대의 과거사를 밤낮으로 들어도 같이 웃을 수가 있기에, 나는 내가 그만큼 성숙해진 것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냥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질투라는 감정은 성숙과 함께 사라지는 마음은 아닌 거더라.

 

박완서 작가가 어느 소설에서 쓰길, 여자의 질투에는 쥐어 잡을 머리채가 필요한 법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란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아니 어쩌면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적을 숱하게 만들고 그 적들과 싸워나가는 과정인 것도 같다. 좋아하는 크기만큼 누군가를 격렬히 미워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사랑에 빠지면 신열이 오르는 수준으로 몸이 달뜨는 것도 그 때문은 아닐까.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때에는 그 고통마저 달콤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막상 질투라는 감정이 시작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질투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이 죽일 놈의 소유욕은 정녕 컨트롤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 고민에 잠 못 이룰 때도 있다. 그러다 몇 년 전 누군가가 쓴질투하지 않는 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글의 필자가 내게 알려준 것이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었다

최근에는 꽤 많이 알려진 개념인데,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多者間)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이들은 일부일처제를 비판하며 집단혼 형태로 가족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지만 파트너의 동의 하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과는 다르다.

 

폴리아모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노가미(monogamy) 즉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결혼 제도라 하여 이를 비판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여러 파트너와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온 우주가 한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곤 하는 나로서는 그 가치관이나 방식에 공감하기 어려웠지만,질투나 소유욕과 같은 감정은 사랑과는 무관한 것이며 극복하고 없애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주장에 관해서는 여러 날을 두고 생각해보게 됐다.  

나에게는 질투, 소유욕, 사랑의 트라이앵글이 항상 한 팀으로 같이 움직이는 거여서 질투나 소유욕이 사랑과 무관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질투가 든다든지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내가 독점하고 소유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질투나 소유욕, 독점욕 같은 감정은 미성숙한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얼마 전 스무 살에 썼던 일기를 펴보았더니 내가 거기에 이런 걸 써놓았더라. 온전히 내 몫인 인간을 딱 하나만 가지고 싶다. 문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들며 이걸 찢어 불태워야 하나 변기에 넣고 내려야 하나 잠시 생각했지만, 실은 나는 여전히 그 유치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런 걸 쓸 때의 마음은,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것임을 깨달을 만큼 성장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게다.

 

그러나 오롯이 내 몫인 인간 하나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있고, 그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던 것도 이제는 관두었다.

 

질투가 사람 잡겠다 싶을 만큼 괴로운 밤이 이어지고, 내가 괴로워해봐야 보는 이 하나 없는 빈방에 누워 질투로 일그러진 마음을 끌어안기라도 하듯 잔뜩 몸을 옆으로 구부렸다. 달 밝은 밤 질투를 세게 앓으면서도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너무나 살아있는 것 같다는 것. 질투에 몸부림하는 사랑을 다시 할 수 없다면 더 살 이유도 없을 것 같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기도 하다.

 

나는 그냥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앞에서 언제까지나 조금 미성숙한 사람이고 싶다. 그냥 죽도록 질투하고 너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나이고 싶다. 그리하여 세월이 조금 흐른 어느 날에는, 너를 독점하기 위해 나의 청춘이 얼마나 애끓었던가를 돌이켜 생각하고 싶다. 질투 없던 사랑은 기억도 나지 않고 전부 흩어져 버렸으니, 나는 또 질투로 끙끙 앓을 수 있는 그런 날들을 가만히 기다리고 싶다. 질투는 내가 살아가는 힘이라고 굳게 믿으며, 넌 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거냐고 마음으로 묻고 또 물으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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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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